‘미안해요, 우리 구제역 신고했어요..’
우리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기 하루 전 옆 농장주가 전화로 한 말이다. 그 얘기를 듣고 퍼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그렇지만 그 다음날 우리 농장에도 구제역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동안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우리 가족이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빠는 30년간 다니시던 은행을 그만두시고 7년 전부터 돼지를 키우기 시작하셨고 구제역이 발생할 때마다 무사히 우리 돼지들을 지켜올 수 있었다. 농장을 시작하시면서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래 농장을 비울 수도 없었는데 작년 말부터는 전국적으로 구제역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부모님은 외출도 못하고 열심히 소독하고 돼지들을 살피셨는데 구제역이 발생했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가지도 못하고 소독하고 그랬던 게 다 헛수고한 거 같아..’ 라는 엄마의 말에 어떠한 위로의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변농가의 구제역 발생소식이 오는 문자소리에 불안해하셨을 부모님의 그 동안의 맘 고생과 구제역 발생으로 인한 부모님이 받으셨을 충격, 그리고 공기로도 전염될 수 있다는 구제역에 걸려서 매몰될 돼지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매몰작업은 넓고 깊게 흙을 파고 그 위에 비닐을 깔고 나서 생석회가루를 뿌린 후 돼지들을 묻고 생석회가루와 흙으로 덮어주는 것으로 끝났다. 정성들여 키운 돼지들이 그 곳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명복을 빌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현재의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들의 살처분 방식은 자연환경과 지하수 오염, 그리고 곧 다가올 봄에는 매몰된 가축들의 부패로 인해 이차적으로 다른 형태의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소각방식 등 다양한 처리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구제역이나 다른 질병들이 이렇게 전국적으로 퍼질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정기적인 역학조사 실시와 함께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발생 규모에 따른 소독방법과 범위, 백신접종 대상 등의 구체적인 지침 등 제도개선과 구제역 발병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가축사육방식 개선에 대한 축산농민 지원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구제역으로 인해 키우던 돼지들을 잃어 가장 가슴이 아플 축산인들과 매몰과정에 참여하는 공무원들과 노동자들의 정신적인 충격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구제역 예방, 대응 그리고 구제역 발생 후 등 전반적인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정책이 마련되어서 구제역으로 죽게 되는 가축들이나 보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조금은 덜 힘들게 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사)시민환경연구소에서는 네이버 해피빈 모금함 ‘구제역 살처분 방역정책 우리가 바꿉시다’ 를 통해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대안찾기에 나서려고 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